제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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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간발달 복지연구소
작성일 2014-03-05 (수) 13:43
분 류 정서-행동
ㆍ조회: 709    
[엄마 노릇에 대한 오해] 원래 이렇게 까지 힘든 걸까?
경모는 확실히 남보다 더 엄마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아이였다. 경모는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을 접하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웠다. 새 옷을 싫어하는 탓에 옷을 사면 1주일 동안 일부러 옷을 잡아당겨서 늘려 놓아야 했고, 신발은 항상 남의 것을 얻어 신겨야 했다. 서너 달이 지난 다음 이제 조금 나아졌을까 하고 새 옷을 입혀 보면 역시 완강하게 저항하고 또 한바탕 난리를 치는게 경모였다.




  밥 먹이는 것도 전쟁이었다. 잔병이라는 잔병은 다 앓고 지나갈 정도로 약한 경모가 먹는 것까지 신통치 않아 우유 먹일 때만 되면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보통 아이들은 돌 무렵이 되면 한 번에 150밀리리터는 거뜬히 먹어 치우는데, 경모는 80밀리리터도 먹기 힘들어 했다. 이유식을 먹일 때도 경모는 먹는 것보다 먹지 못하고, 안 먹는게 더 많았다. 오죽 먹는게 신경 쓰였으면 나 같은 덤벙이가 1년동안 경모가 하루에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일일이 기록했을까.   그래도 경모가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위로가 되었을텐데, 경모의 까탈진 입맛과 기호는 시간이 지나도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먹는 것과 입는 것은 내가 어떤 노력이라도 할 수 있으니 나은 편이었다. 경모는 갑자기 이유 없이 자지러졌고, 30분 단위로 깨어나 울었다. 왜 할머니 옷을 갑자기 잡아채 찢어 버리는지, 왜 가끔가다 자기 머리를 바닥에 박는지 아무리 내 몸과 마음을 낮추어 아이에게 맞추어도 절대 알 수가 없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생활 신조를 철썩같이 믿고 살던 나였다. 무엇이든 노력해서는 안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던 나였다. 그래서 나는 실패했을 때 좌저을 겪는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었다. 그것은 그만큼 당신이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세상을 탓하기 전에 나태한 자신을 탓하라며 거침없는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경모 덕택에 나는 나의 노력으로 안 되는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빨간 불’이 켜졌다. 그저 모든게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분명히 이 아이는 내가 낳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이를 이해하는 게 힘들까 싶었다. 아무 일도 하기 싫고, 남편 아이 할 것 없이 밉기만 하고, 매사에 짜증만 나고, 도와 주는 사람도 하나같이 마음에 안 둘고, 한마디로 살기가 싫었다. 그 사이 몸무게도 7킬로그램이나 빠졌다.



나는 그 당시 나만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희생에는 절대 어떤 보상도 없다고 여겼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초보 엄마들의 솔직한 마음은 이럴 것이다.




  사람들이 좌절을 느끼는 건 상황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가 되면 위처럼 전혀 예상치 않ㄴ은, 기대하지 않은 사건들로 인해 통제 불가능한 상황들을 자꾸 접하게 되면서 좌절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그건 엄마가 되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만 힘든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이런 웬만한 좌절에 초연해 질 수 있는 ‘좌절 인내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 늘 반복되는 ‘구질구질한’ 일들도 거뜬히 해 낼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길러야 한다. 왜냐하면 엄마가 아이 키우는 일에 자꾸만 회의를 갖게 되면 엄마의 ‘긍정적 기대’를 먹고 자라나야 할 아이가 시들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제 오늘이 비슷해 보여도 어느순간 확 성장한다. 성장했을 때 엄마의 긍정적인 기대를 먹고 자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참 많이 다르다. 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믿었는제, 안달복달 했는지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어 있다. 엄마가 심신이 힘든 상태로 아이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 대신 불만과 짜증밖에 주지 못했다면, 아이가 ‘긍정’의 영역에서 벗어나 ‘부정’의 영역으로 들어가는건 당연한 일이잖은가. 그러면 아이는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돼 마음에 병이 들게 된다.


‘원래 이렇게까지 힘든 걸까?’ 를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난 엄마 노릇이 원래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과 하지만 분명히 그만한 노력을 쏟을만한 일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어떤 소중한 것도 희생 없이, 노력 없이 공짜로 얻어지는 건 없다. 학위를 따려 해도 3~4년 밤낮 없는 시간과 적지 않은 돈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하다못해 질 좋고 값 싼 찬거리를 사려 해도 새벽부터 농수산물 시장에 가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사춘기의 방황을 거쳐야 성숙한 어른이 되고, 20대의 불안함을 극복하고 나서야 30대, 40대의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엄마’가 되는 일 역시 그만한 희생과 노력이 따르게 마련이다.




  왜 나만 희생해야 되느냐며 피해 의식에 젖어 있는 엄마들이 있다면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혹시 아무런 노력 없이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건 아닌지. 당연히 해야 하는 노력조차 사회가 엄마들에게 요구하는 과도한 희생으로 돌려 버리는 건 아닌지....... 엄마들은 정말 힘든게 무엇인가. 견뎌야 할 것과 이겨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살펴보고, 겪어야 할 일이면 ‘까짓 것’하며 겪어내는 당참을 가져야 한다. ‘전쟁’ 같다는 육아를 엄마와 아이를 모두 살리는 윈-윈 게임으로 만드는 힘은 거기에 있다.

 

 

 

글쓴이: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 신의진. 아이보다 더 아픈 엄마들(2002). 중앙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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